예술과 상업 사이…'더 메뉴'와 '놉'의 예술론

 

어제도 지루한 밤을 보내기 위해 OTT를 뒤적거렸다. 그러다 눈에 띈 '더 메뉴'(The Menu). 지난해 정말 많은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는데, 하필 바쁜 연말 시즌 개봉한 이 영화는 사정상 보지 못했다.


보지 못한 아쉬움이 컸던 터라 많은 기대를 안고 영화를 틀었다. 외딴 섬에 위치한 파인 다이닝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니! 아름다운 건축물과 장식품들, 그리고 한 땀 한 땀 수놓은듯 예술에 가까운 음식들이 계속 등장하겠지. 예술 탐닉에 대한 동경(?)이 있는 내게 보는 즐거움을 선사할 것만 같은 영화였다.


예상과는 달리 영화를 보는 내내 고급 문화와 예술에 대한 향유 보다는 오히려 흑인 빈곤층 삶을 주로 담은 아이코닉한 감독 조던 필 영화 '놉'이 떠올랐다. 비슷한 시기 각기 다른 OTT에 공개된 '더 메뉴'(디즈니플러스)와 '놉'(넷플릭스)를 함께 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것 같다. 그럼 두 작품의 공통점은 뭘까.




# '더 메뉴' 정보


OTT: 디즈니플러스

개봉: 2022. 12. 7

장르: 스릴러

감독: 마크 미로드

출연: 랄프 파인즈, 안야 테일러 조이, 니콜라스 홀트

러닝타임: 107분

등급: 15세 관람가


반가운 얼굴들이 많다. '해리포터' 시리즈,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나온 랄프 파인즈가 영화를 이끈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 '마고' 역은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으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안야 테일러 조이가 연기했고, 미식가 '타일러'는 니콜라스 홀트가 맡았다.


# '더 메뉴' 줄거리


외딴 섬에 있는 레스토랑 '호손'에 열두명의 손님이 도착한다. 스타 셰프 슬로윅이 내놓는 한 끼를 먹기 위해 이들은 1250달러(약 161만6000원)을 지불했다.


숭배에 가까울 정도로 슬로윅에 열광하는 미식가 테일러와 급조한 여자친구 마고, 열한 번이나 이 레스토랑에 온 부유한 노부부, 레스토랑에 거금을 투자한 엔젤투자자의 동업자들, 슬로윅을 스타 세프로 만든 요리 평론가와 편집자, 슬로윅과 친구라고 거들먹거리는 연예인 등...


아뮤즈 부쉬부터 마지막 디저트까지 코스요리가 진행될 때마다 슬로윅의 위험한 계획들이 진행된다. 하지만 예약자 명단에 없는 마고의 존재가 슬로윅은 불편하다. 예술과 음식을 향유할 줄도, 명성과 부를 갖추지도 않은 마고는 손님도, 세프도 아닌 제3자로 존재한다. 슬로윅과 마고의 심리전은 내내 영화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 '더 메뉴'의 예술론 (스포주의)

영화는 단편적으로는 요식업계를 배경으로 한 사이코패스가 벌이는 무시무시한 범죄 이야기다. 하지만 음식을 하나의 작품으로 상정한다면, '더 메뉴'는 곧 자본주의에 저항하려는 감독의 예술론이 담긴 영화다.


슬로윅이 내놓은 코스 요리 면면에는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예술 문법이 담겨있다. '빵 없는 빵'과 손님들의 치부가 레이저로 프린팅된 토르티야, 분리된 에멀션 소스 등이 그렇다.


빈민가 출신으로 치즈버거를 굽다가 음식 평론가의 글 하나로 스타 셰프가 된 그는 번아웃과 영혼의 상실을 두려워하며 스스로를 학대한다. 영화는 자본이 예술계에 숨을 불어넣고, 또 파괴하는 과정을 셰프의 삶을 통해 그려낸다.


"그가 오랫동안 천착해 온 눈에 대한 집착이 접시에서도 나타나네. 진부해"

"배가 고프니 다른 음식 좀 줘요."


영화에서 손님은 예술을 향유하는 자, 즉 관객이다. 평론가는 많은 레스토랑 문을 닫게 하거나, 아니면 슬로윅처럼 자본에 종속시켜 예술성을 상실케 한다. 지식을 권력으로 사용하여 예술을 망치는 이들이다. 졸작임을 알면서도 자본의 노예가 되어 예술인의 가치를 저버린 조지도 마찬가지다. 또 돈이 있는 자들은 예술을 마음대로 조정하며, 편취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감독과 슬로윅은 대체메뉴를 내놓으라며 군림한 투자자를 수면 아래에 잠들게 한다.


굉장한 미식가로 나오는 타일러는 또 어떤가. 어쩌면 가장 비판 받고 조롱 받는 대상은 바로 타일러다. 그는 미식과는 거리가 먼 마고에게 줄담배를 태우면 안 된다는 규칙을 내세우고 무시하며 타박한다. 맹목적인 숭배 대상을 만들어내며, 제멋대로 원리원칙을 세우며 이를 권력화하고 군림하려는 타일러에게 슬로윅은 말한다. "끔직해. 너 같은 인간 때문에 요리의 신비가 사라졌어."


슬로윅은 예술과 자본의 매커니즘을 선명히 전달하며, 예술의 상실을 만든 이들을 하나하나 처단한다. 물론 자신도 그 범주 안에 있다.


"여러분들은 제 예술과 인생의 몰락을 상징하고, 이제 제 마지막 걸작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 코스 요리 '스모어'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들의 표정은 꽤나 인상적이다. 죽음에 저항하고, 도망치려던 손님들은 어느새 초콜릿과 마시멜로가 되어 녹아 내린다. 이들 얼굴에는 마치 두려움과 안도, 환희가 공존하는 듯하다. 마고는 마치 영화를 감상하듯 불타는 섬을 치즈버거를 먹으며 관람한다.






# '놉' 정보


디즈니플러스에 월트디즈니컴퍼니의 '더 메뉴'가 있다면, 넷플릭스엔 유니버설 픽쳐스의 '놉'이 있다. 두 작품은 기본적으로 스릴러에 코미디를 한 스푼 첨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놉' 기본 정보를 살펴보자.


OTT: 넷플릭스

개봉: 2022. 8. 17

장르: 미스터리, 공포

감독: 조던 필

출연: 다니엘 칼루야, 케케 파머, 스티븐 연

러닝타임: 130분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기본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광활한 대지 위에 덩그러니 위치한 말 농장. 이곳을 운영하는 아버지 오티스 헤이우드는 어느 날 기이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아들딸인 OJ와 에메랄드는 아버지를 죽게 한 'UAP'(미확인 공중현상)를 카메라로 촬영해 돈을 벌려고 한다.





# '놉'의 예술론 (스포주의)


'놉' 역시 예술에 관한 영화다. "왜 우리는 이렇게 스펙터클에 집착하는가" 감독이 품은 자조가 영화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비극마저 구경거리와 오락거리로 소비하는 영상 산업에 대한 고민은 OJ 입을 통해 '나쁜 기적'으로 일컬어진다. 괴생명체 모습 역시 카메라 렌즈처럼 형상화돼 관심이 곧 권력이 되는 현실을 암시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스펙터클에 중독됐다. 이들이 하는 행동들은 세부적으로는 달라도 크게는 같다. 모든 삶이 비즈니스로 활용되며, 특히 기묘한 쇼비즈니스를 갈구한다.


헤이우드 남매는 '오프라 쇼' 출연을 위해 목숨까지 내걸고 뛰어다니며, 촬영감독 앤틀러스는 콘텐츠를 기록하는 행위 자체에 광적으로 빠져있다. 스포트라이트처럼 빛나는 헬멧을 쓴 방송국 관게자 역시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카메라로 영상을 찍어 달라 부탁한다. 참사를 겪고도 상업주의에 빠져있는 리키 주프 박 역시 할리우드의 스펙터클 중독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거대하고, 포악하고, 주목받기"를 원하는 UAP의 본질을 깨달은 OJ는 말한다.


"보지마!"



# 예술과 상업 사이


이 두 작품은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전하며 지나친 상업성에 대한 경계를 드러낸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영화 역시 대형 자본이 만들어낸 상업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다.


'더 메뉴'는 월트디즈니컴퍼니의 영화. 대형 자본이 만들어낸 영화에서 감독은 예술과 상업의 딜레마를 전달하면서도 전복적인 상상력을 구현하며 평론가와 씨네필을 조소한다. 


'놉' 역시 스펙터클 명가인 유니버설 픽쳐스의 작품. 스펙터클 중독에 대해 경고하면서도 계속해서 보고싶어지는 UAP '그것'의 속성을 통해 관객들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역설을 보여준다.



영화와 예술의 세계, 참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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